주니어 보딩 스쿨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. 입학 사무처장 H씨는 Columbia Teacher’s College를 졸업한 분으로 그의 할아버지 때부터 R보딩 스쿨에 관계했고, 대부분 친척들이 R스쿨에 다녔기에 R스쿨은 자신의 고향이라고 했습니다. 그는 이 학교에 입학사무처 직원을 포함 사무처장으로 봉직한 지가 20년이 넘었기 때문에 입학 사무에 밝았고, 외국 학생들의 유학 상황 특히 최근에 들어 물 밀듯이 밀려 오는 한국 학생들의 유학 사정에 관하여 정통했습니다. 물론 입학에 대한 최종적인 결정자는 아니었지만 입학 허가에 대한 H씨의 영향력은 막강하다는 것이 중론이었습니다.
H씨의 매너는 무척 훌륭했습니다. 입학사무처 문 앞에까지 따라 나와 문을 열어 주고 알맞게 힘을 준 손으로 악수를 하고 멀리 한국에서부터 왔는데 피곤하지 않느냐고 친절히 물었습니다. 흠 잡을 데 없이,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표현해야 옳겠네요. 그런데 무엇인가 따뜻한 면이 결여됐고 약간 도도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. 친절한 매너에도 불구하고 H씨의 도도해 보이는 표정에 약간 주눅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.
"촌지"란 한국에서도 없어져야 할 존재인 것을...
방에 들어서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. 그의 방에는 전시되어 있는, 한국에서 건너 온 듯한 여러 가지 진귀한 장식 용품들을 보고 눈이 휘둥그래지지 않을 수 없었어요. 아담한 사이즈의 화류자개장, 병풍, 자개 화병, 넉넉해 보이는 달 항아리부터 그의 책상에는 우리나라 토산품점을 통째로 가져온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갖가지 물건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널려져 있었습니다. 자개로 장식된 명함집, 매듭이 장식된 열쇠고리, 우리나라 고유 문양이 양각된 페이퍼 나이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한국의 물건들로 그득했습니다. 저 자개장은 선물로 포장하여 증정하기에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크기일 텐데 어떻게 이 방까지 왔을까 하는 생각이 맴돌았고 그 물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.
H씨는 제게 첫 마디를 던지셨습니다. “미세스 박, 익히 들어 잘 아시겠지만, 우리 학교의 명성은 한국 부모들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. 그래서 아주 많은 한국 학생들이 유학하고 싶어하는 곳입니다. 그런데 그 많은 학생을 받아 들일 수 없어 심히 유감스럽습니다”
그의 첫 마디에서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게 느껴졌습니다. 사실 객관적으로만 판단한다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발언이었습니다. 그런데 이 방에 있는 모든 물건이 한국의 학생이나 그들의 부모로부터 받은 선물일 것이라고 추측하니, 제 못된 성미는 약간 비틀리기 시작했습니다. 선물이면 좋을 텐데... 초등학생 키만한 자개장은 아무래도 선물로 보기에는 너무 키가 크지 않나요? 일단 제 머릿속에서 가공이 되어진 H선생님의 말씀은 마치 한국 부모를 경멸하는 표현이 아닐까 의심이 생기며 약간 심기가 불편해졌습니다. 한편으로는 이 모든 물건을 태평양을 건너 공수해 온 한국 부모의 정성(?)에 화가 치밀기 시작했습니다. 장식장 위에 무심히 너무나 순진한 모습으로 넉넉하게 앉아 있는 달 항아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. 입학사무처 건물을 나오며 부끄러운 한국인의 모습을 본 것 같아 왠지 얼굴이 화끈거렸고, 호텔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화가 나 심히 불편한 하루였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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